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를 보았다. 예전에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 영화는 마음을 끄는 구석이 많다. 이혜영 배우의 역할도 큰 것 같다. 이렇게 호방하게 후려치면서도 맑은 캐릭터가 전에도 있었던가 싶다. 몇 가지 궁금한 질문과 생각들.
1.
영화의 주인공은 소설가다. 소설가가 단편 영화를 찍는 얘기다. 소설가는 오랫동안 소설을 써온 사람이고, 최근에는 힘을 잃었다. 서사 중심의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소설을 써야 하나 싶은데, 자신이 없다. 어떤 게 이야기가 될지 고심하고 있다. 생활과 상황을 과장하는 듯한 자신의 소설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그래서 단편 영화 역시 그런 과장이 없는 상황을 찍고 싶다. 반면에 시인은 '이야기다워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홍상수 감독이 생각하는 시와 소설은 어떤 것일까.
2.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점점 에세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보다 부드럽게 흘러가면서 수많은 우연이 하나의 바구니에 담기는 것 같다. 실제 상황과 영화 속 장면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김민희 배우를 찍은 장면에서 더더욱)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고민이 그대로 영화에 투영돼 있다. 맑아진다는 건 그런 뜻일까. 홍상수 감독이 끝내 가고 싶어하는 지점이 궁금하다.
3.
홍상수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요즘 들어 집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예전에는 북촌이나 인사동이 주무대였다면 요즘은 서울 외곽으로 무대를 옮긴 듯하다.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지금 잘나가는 사람보다는 한때 잘나갔거나 스스로 외곽으로 밀려간 사람이 많다. '당신얼굴 앞에서'에서는 아파트 시세까지 등장하더니 이제는 도예가의 유지비까지 걱정하는 감독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4.
'당신얼굴 앞에서'에는 아이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창문 너머 앞모습이다. '딸기분식' 창문 너머에서 물끄러미 안을 들여다보는 아이. 우연이 난무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서 아이들의 등장은 우연에 환상을 첨가해주는 것 같다.
5.
'당신얼굴 앞에서'에서는 영화를 찍지 못하지만 이번에는 영화를 찍는다. 감독은 영화를 포기하고 소설가는 영화를 찍는다.
- 평점
- 7.5 (2022.04.21 개봉)
- 감독
- 홍상수
- 출연
- 이혜영, 김민희, 서영화, 권해효, 조윤희, 기주봉, 박미소, 하성국, 이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