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2022. 9. 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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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선수들에게는 저마다의 ‘루틴’이 있다. 루틴이란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하기 위하여 행하는 반복적인 동작을 뜻하는데, 단순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루틴들도 많다. 예전의 한 테니스 선수는 서브를 넣기 전 무려 30회 정도 공을 튀겨야 했다. 공 튀기다가 체력 소진될까 걱정된다. 세계적인 선수 라파엘 나달 역시 서브를 넣을 때 엉덩이에 낀 바지를 정리하는 독특한 루틴이 있다. 똑같은 운동을 반복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루틴은 자신의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고, 승리를 위한 의식 같은 것이다. 똑같은 운동을 반복하는 중에 즐기는 자신만의 소소한 재미일 수도 있고.

루틴의 원래 뜻은 ‘일상, 혹은 틀에 박힌 일’이다.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고 세수를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 회사에 가고 어제 하던 일을 이어서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이 든다. 반복, 반복, 반복되는 일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복을 싫어한다. 반복되는 노동을 싫어하고 반복되는 잔소리를 지겨워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탈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취미를 만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반복을 좋아하기 위해 운동 선수들은 루틴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글을 쓰기 전의 루틴이 있다. 우선 비누 거품을 가득 낸 다음 손을 씻는다. 그리고 손톱을 깎는다. 어울리는 음악을 골라서 재생시키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어제 쓴 글을 한번 읽어본 다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수정한다. 그리고 이어서 써 나간다.

루틴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추측해보면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글을 쓰지 못할 이유’를 머릿속으로 계속 만들어낸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어한다.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인데도 그렇다. 지금은 다른 일이 있으니까, 오늘은 어쩐지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으니까, 비가 오니까, 배가 고프니까, 꼭 봐야 할 책이 떠올랐으니까 글을 나중에 쓰자고 결정한다. 대부분 핑계다. 글 쓰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가 실패할 것이 겁나기 때문이다. 엉망진창인 글을 쓰게 될 것 같고, 쓰다가 마음이 답답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막상 쓰기 시작하면 글쓰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데, 쓰기 전에는 언제나 두렵다. 그럴 때 루틴이 필요하다. 루틴이 있으면 걱정과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글쓰기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모두에게 각자의 루틴이 있다. 샤워를 할 때도 운동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루틴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어떤 루틴은 깨져버렸지만 이제는 모두들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루틴을 만드는 일은, 반복을 사랑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어떻게 반복을 사랑할 수 있을까? 반복 속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야 한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의 미세한 틈을 발견해야 한다. 데칼코마니처럼 겹쳐놓은 듯해 보이는 어제와 오늘의 ‘다른 그림 찾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패터슨>을 보면 ‘반복 사랑하기’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은 패터슨 시에 산다. 말장난이 아니다. 감독 짐 자무시의 의도이다.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를 통해 반복이 주는 리듬을 강조한 것이다. 패터슨 씨의 직업은 버스 운전사. 매일 똑같은 경로를 반복해서 다녀야 하는 사람이다. 패터슨 씨는 자신만의 루틴까지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 ‘로라’가 묻는다. “오늘 어땠어?” “똑같았어.” 저녁이 되면 개 ‘마빈’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개를 묶어둔 다음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다. 매일매일이 그야말로 ‘복붙’일 것 같지만 패터슨 씨가 남들과 다른 게 딱 하나 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시를 쓴다. 이런 시다.

“난 집 안에 있다./ 바깥 날씨가 좋다 : 포근하니/ 차가운 눈 위의 햇살./ 봄의 첫날/ 혹은 겨울의 마지막./ 나의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 문밖을 달린다,/ 나의 상반신은 여기서 시를 쓰고 있다.”

이런 시도 있다. ‘운행’이라는 제목의 시다.

“나는 지나간다. 수많은 분자가 옆으로 비켜나 나를 위해 길을 터주면 길 옆으로 더 많은 분자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와이퍼 날이 끼익 대기 시작한다. 비가 멈췄다. 나는 멈춰선다. 모퉁이에는 노란 비옷을 입은 한 소년이 엄마 손을 잡고 있다.”

‘운행’이라는 시를 쓴 날, ‘나는 멈춰선다’라는 구절을 쓴 날, 하필이면 버스가 고장으로 멈춰선다.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아내와도 그 이야기를 하고, 바의 사장과도 그 이야기를 한다. 다들 버스 사고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신나한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영화는 토요일 밤 절정을 맞이한다. 부부가 시내에 영화를 보러 간 사이, 마빈이 패터슨의 시가 담긴 비밀 노트를 갈기갈기 물어뜯어 놓은 것이다. 패터슨의 시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패터슨은 ‘물 위에 쓴 낱말일 뿐’이라고,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상실감을 감추기 힘들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패터슨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동안 공들여 정리한 문서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컴퓨터 전원이 꺼진 경험이 있다면, 아끼고 아끼던 노트를 지하철에 두고 내린 후 찾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패터슨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고 있을지 알 것이다.

일요일 아침, 패터슨은 혼자 있고 싶어 나선 산책길에서 일본 시인을 만난다. 일본 시인은 패터슨의 유명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흔적을 찾아온 사람이다. 일본 시인이 묻는다.

“당신도 패터슨의 시인입니까?”

패터슨이 대답한다.

“아뇨. 전 버스 운전사예요. 그냥 버스 기사.”

“아, 패터슨의 버스 기사. 아주 시적이군요.”

일본 시인은 패터슨에게 노트 한 권을 선물한다. 그러곤 패터슨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몇 시간 전에 당신의 모든 시를 개가 찢어 발긴 걸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덧붙인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패터슨은 일본 시인이 준 노트를 펼쳐 든다. 그러곤 폭포를 바라본다. 그는 새로운 노트에다 새로운 시를 쓰기 시작한다. 다시 월요일이 되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악당도 등장하지 않는다. 액션도 없고 총격전도 없다. 반복, 반복, 반복 사이에 작은 변화가 있을 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무료해 보이지만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반복은 무료함일까, 편안함일까. 코로나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했던 일상의 반복을 그리워한다. 무료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실은 편안함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는다. 가족이 아프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큰돈을 잃기도 하고, 의외의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일상의 반복에서 무료함을 느낀다는 것은, 실은 큰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고, 별일이 없다는 뜻이다.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반복이 편안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반복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아주 작은 것들, 예를 들면 바쁜 아침 짬을 내 마시는 커피 한 잔, 문득 바라본 하늘에 펼쳐진 그림 같은 구름의 행렬, 친구에게서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을 자세하게 기억하게 된다. 패터슨처럼 그걸 그대로 적으면 시가 된다.

우리 모두 시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시는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가 겪은 반복을 일렬로 세워서 리듬을 만들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찰나를 기록해서 이미지를 만들면 된다. 비밀 노트를 하나씩 만들고, 거기에 시를 쓰고 텅 빈 페이지를 보면서 우리가 겪을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패터슨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을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평점
7.8 (2017.12.21 개봉)
감독
짐 자무쉬
출연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넬리, 나가세 마사토시, 카라 헤이워드, 루이스 다 실바 주니어, 스털링 제린스, 자레드 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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