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2022. 11.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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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갑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 죽을 것’이라는 막연함이 아니라 ‘며칠 후에 우리 모두 함께 죽을 것’이라는 구체성이 생긴다. 우주에서 정체 모를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들고, 과학자들은 혜성이 지구에 부딪칠 확률이 100퍼센트라고 말해준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도 그런 이야기를 소설로 써본 적이 있다.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울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갈 것이며, 어떤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 것이고, 어떤 사람은 어떤 순간을 후회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특별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그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소설을 쓰면서 깨닫게 됐다.


할리우드에서는 지구 종말에 대한 영화를 주기적으로 만들어낸다. 외계인 침공, 기후 변화,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등 수많은 시나리오가 있지만 그중 가장 자주 반복되는 것은 혜성이나 행성과 지구가 충돌하는 시나리오다. 광활한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알 수 없으니까, 알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테니까 그런 상상을 자주 하게 되는 모양이다.


1998년에 소재가 비슷한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아마겟돈>은 지구로 돌진하는 소행성을 파괴하는 이야기다. <딥 임팩트>는 5천억 톤의 미확인 혜성과 지구의 충돌을 막는 이야기다. 그로부터 23년 후인 2021년, 넷플릭스에서 <돈 룩 업>이 공개됐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의 존재를 발견한 후의 좌충우돌을 담은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다.


지구와 다른 별이 충돌한다는 설정은 23년 동안 바뀐 게 없지만, 재앙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많이 바뀌었다.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아마겟돈>의 감독은 그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미국인들이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에 담았다.  <딥 임팩트>의 메인 포스터 광고 문구는 “바다가 치솟고, 도시가 무너져 내려도, 희망은 살아남는다”이다. 지구와 별이 부딪치는 극적인 상황을 설정한 이유는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서였다. 죽음이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2021년 영화 <돈 룩 업>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대학원 박사과정 출신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천문학자 랜달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느날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 미국 대통령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만, 관심이 없다.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소식을 알리지만, 역시 관심이 없다. 대통령과 언론과 기업은 어떻게 하면 지구와 혜성 충돌 이슈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있다. 일반 대중들은 SNS에 빠져서 코앞에 닥친 죽음의 위기를 무시한다.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우리에게 닥친 죽음을 알 수 있는데, 누구도 올려다보지 않는다. 심지어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고(Don’t Look up) 내 앞을 똑바로 보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블랙 코미디 장르의 대가다. <빅 쇼트>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 직전의 미국 경제를 현란한 기법으로 풍자했고, <바이스>에서는 제46대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생애를 신랄하게 재현했다. <돈 룩 업>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돈 룩 업>은 현실을 과장하여 풍자한 블랙 코미디 영화지만, ‘에이 말도 안 돼, 코앞에 종말이 닥쳤는데 다들 저러고 있다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러고 있다. 기후 위기, 화석 연료 위기, 환경 재앙 같은 뉴스를 매일 접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러려니 한다. 혜성의 충돌과는 달리 환경이나 기후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도, 우리의 죽음을 조금 연기할 수 있는데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고개를 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1998년의 영화와 2021년의 영화에서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최후의 순간, 누구와 함께 있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딥 임팩트>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주인공 제니 러너가 아버지와 모든 앙금을 푼 이후 해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사소한 앙금 따위 큰 문제 아닐 것 같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채 최후를 맞고 싶어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가라앉는 순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음악을 연주했던 현악 4중주단을 기억할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들이 음악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음악과 함께 죽기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맞이한다면,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조금은 덜 무서울 것이다.


<돈 룩 업>에서도 혜성의 충돌을 앞둔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혜성을 향해 총을 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을 마시며 남의 뒷담화나 실컷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자신들의 결혼 비디오를 보는 사람, 아이를 목욕시키는 사람, 딸을 만나러 가는 사람, 마약을 하러 가는 사람, 거리를 불태우는 사람 등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주인공 케이트와 랜달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들은 손을 맞잡고 앉아서 집밥을 먹으며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비밀 이야기를 건넨다. 식탁에 앉은 한 사람이 인생 최고의 날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당에서 잠들었던 그날에 감사해요. 아기 사슴을 마주보며 잠에서 깼죠. 인생 최고의 날이었어요.”


그러자 케이트가 이어서 말한다.


“내가 감사한 건, 우리가 노력했다는 거예요.”


케이트는 지구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실패했다는 이유로 모든 노력이 의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식탁의 한 사람이 기도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손을 맞잡는다.


“의심 많은 저희를 용서하소서. 또한, 이 어두운 시기를 사랑으로 위로하시고 무엇이 닥쳐오든 당신의 담대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어쩌면 ‘돈 룩 업’이라는 제목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구의 종말을 깨달으려면 하늘을 쳐다봐야 한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만약 너무 늦었다면, 종말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면, 그때부터는 하늘을 쳐다보는 대신 당신 앞에 앉은 소중한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돈 룩 업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구를 파괴할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다가온다는 불편한 소식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지구를 멸망으로 이끌지도 모르는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언론 투어에 나선 두 사람,혜성 충돌에 무관심한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의 집무실을 시작으로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 출연까지 이어가지만 성과가 없다.혜성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6개월, 24시간 내내 뉴스와 정보는 쏟아지고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푹 빠져있는 시대이지만 정작 이 중요한 뉴스는 대중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세상 사람들이 하늘을 좀 올려다볼 수 있을까?!
평점
8.8 (2021.12.08 개봉)
감독
아담 맥케이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롭 모건, 조나 힐, 마크 라이런스, 타일러 페리, 티모시 샬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커디, 히메쉬 파텔, 멜라니 린스키, 마이클 치클리스, 토머 시슬리, 폴 가일포일, 로버트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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