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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by 김중혁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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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농담을 하나 들었다. “신이 방귀 냄새를 만드신 이유를 아니?” 아빠가 방귀를 뿡, 뀌더니 물었다. 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가 웃으면서 답을 말했다. “못 듣는 사람도 즐길 수 있으라고.” 딸은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고 있다.


영화 <코다>의 한 장면이다. ‘코다(Coda)’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Children Of Deaf Adult)’의 준말이다. 농담을 했던 아빠는 농인이고 딸은 코다. 딸의 이름은 루비(에밀리아 존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아빠, 엄마, 오빠가 모두 농인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통역 역할을 도맡아 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기잡이배도 늘 함께 탔다. 어선을 운행하려면 무선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했고, 그 한 명은 언제나 루비였다.


방귀 농담은 루비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인들에게 냄새는 중요하다. 루비는 냄새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학교에 가면 비린내 때문에 아이들이 놀린다. “어디서 생선 냄새 안 나니?” 루비는 익숙하다. 친한 친구 거티는 “그래도 귀머거리 흉내는 이제 안 내네. 발전했다.”라며 루비를 위로한다.


영화 <코다>의 원작은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다. 줄거리는 비슷한데, 세밀한 설정은 많이 다르다. 냄새가 대표적이다. 미국 영화 <코다>의 루비는 생선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고,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주인공 벨리에 집은 소를 키우고 치즈를 판다. 생선 냄새와 치즈 냄새의 차이다. 만약 한국에서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냄새로 바뀔지 궁금하다.


또 다른 차이는 음악이다. 음악 영화답게 두 작품 모두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하다. <미라클 벨리에>는 아름다운 샹송들과 함께 프랑스 국민 가수로 불리는 미셸 사르두의 <비상(Je Vole)>이 가장 극적인 순간에  나온다. <코다>는 사랑을 노래한 마빈 게이의 노래들과 함께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가 흘러나온다. 두 편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다.


<코다>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루비의 선택이다. 루비는 가족과 자신의 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가족을 벗어나 자신의 꿈에 도전할 것인가. 자신의 꿈을 도와줄 음악 선생과의 약속이 있는 날, 가족들은 텔레비전 방송국 인터뷰를 해야 한다. 루비가 통역해주지 않으면 엉망이 될 것이다. 루비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꿈을 유보하고 가족에게 머문다. 음악 선생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루비에게 실망하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루비에게 가족은 굴레이자 휴식처다. 영화 초반 농인 가족에게 둘러싸인 루비의 현실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소리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가족에 비해, 루비는 사소한 소리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이어폰을 사용하려고 하면 엄마가 한소리 한다. “이어폰 빼. 예의 없잖아.” 루비가 대든다. “시끄러운 건 예의 있고?” 가족은 아마 오랫동안 소리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을 것이다. 루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역시 가족이다. 농인과 청인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어릴 때부터 그 모든 일을 해내느라 얼마나 벅찬지, 가족들은 안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


음악 선생이 루비에게 노래를 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묻는 장면이 있다. 루비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대신 수어로 표현한다. 수어 역시 말이지만 말보다 훨씬 풍요롭게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 수어로는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 더 세밀하게 마음의 움직임을 묘사할 수 있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다르듯 청인의 언어와 농인의 언어가 다르다. 어떤 것이 낫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소수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며 언어를 배우려 노력한다. 영화 속에서 농인의 수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노래 부를 때 가장 행복하다는 딸에게 엄마는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준다. “내가 장님이었으면 그림을 그리고 싶었겠네.” 엄마는 딸이 가족을 떠날까봐 두렵다. 두려워서 자꾸만 상처 주는 말을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가족이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플 수밖에 없다.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알릴 길이 없다. 자신이 감정을 표출하면서 얼마나 해방감을 느끼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루비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꿈을 쫓는 것이 가족을 배신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만이 가족을 위하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된다. 아빠는 딸의 노래가 너무나 듣고 싶어서 노래 부르는 딸의 목에다 손을 갖다 댄다. 울림을 통해, 떨림을 통해, 딸의 노래를 듣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예상한다 해도 울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노래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코다>의 감독 션 헤이더는 쉽지 않은 도전을 했다. 농인 역할의 주연 배우를 실제 농인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촬영 과정이 힘들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시야에 항상 통역사를 두고, 야간 촬영 때는 통역사의 손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허리에 조명을 설치해 손을 비추게 했고, 농인들의 가구 배치법에 대해 고민했다.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항상 손이 보여야 하므로) 클로즈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소리가 아닌 시각 정보 중심으로 편집을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션 헤이더 감독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연출한 ‘CODA KOREA’의 대표 이길보라 감독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수어는 스크린을 통해 탐구하기에 놀라울 정도로 시각적인 언어이며, 그 언어의 힘을 빌려 제가 감독으로서 일해온 시간 중 가장 협업적인 현장을 겪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음악 선생은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이 없는 루비에게 포크 싱어 ‘밥 딜런’을 예로 든다. 데이비드 보위가 밥 딜런에게 했던 말이다. “당신 목소리는 모래와 접착제 같아.” 음악 선생은 “할 말이 없는 예쁜 목소리는 차고 넘쳐. 넌 할 말이 있니?”라고 묻는다. 음악 선생은 학생들을 좋은 목소리와 나쁜 목소리로 구분하지 않는다. 할 말이 있는 목소리와 할 말이 없어서 예쁘기만 한 목소리로 구분한다. 할 말이 있다면 그 목소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목소리가 된다. <코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법에 대한 영화다. 그 목소리란 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것이다.
영화 <코다>는 제94회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미라클 벨리에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폴라는 파리 전학생 가브리엘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가 있는 합창부에 가입한다. 그런데 한 번도 소리 내어 노래한 적 없었던 폴라의 천재적 재능을 엿본 선생님은 파리에 있는 합창학교 오디션을 제안하고 가브리엘과의 듀엣 공연의 기회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들을 수 없는 가족과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로 바쁜 폴라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떠나면 가족들에게 찾아올 혼란을 걱정한다. 게다가 늘 사랑을 줬던 엄마의 속내를 알게 되면서 폴라는 급기야 오디션을 포기하게 되는데…
평점
8.5 (2015.08.27 개봉)
감독
에릭 라튀쥬
출연
카린 비아르, 프랑소아 다미앙, 에릭 엘모스니노, 루안 에머라, 록산느 듀란, 일리안 베르갈라, 루카 젤베르, 마르 소뒤프, 스테판 워즈토위츠, 제롬 키르셰
 
코다
2021년, 음악의 마법에 빠질 시간! 가장 조용한 세상에서 시작된 여름의 노래!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
평점
9.1 (2021.08.31 개봉)
감독
션 헤이더
출연
에밀리아 존스, 퍼디아 월시 필로, 에우헤니오 데르베스, 말리 매트린, 트로이 코처, 다니엘 듀런트, 에이미 포사이스, 존 피오르, 로니 파머, 케빈 채프만, 호세 군스 알베스, 오웬 버크, 아멘 가로, 멜리사 맥미킨, 에리카 맥더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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