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78 애프터 양 영화 속 춤추는 장면을 좋아한다. 격렬하게 몸을 흔드는 장면도 좋고, 부드럽고 우아한 춤 장면도 좋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 거기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몸은 주체할 수 없이 움직이고,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아름다우며, 감정은 넘쳐흐르고. 장면과 장면의 연결은 꿈에서 본 것처럼 황홀하다. 춤은 이 모든 것을 압축해서 관객에게 전달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 편의 춤 영화들. 영화 의 마지막 춤 시퀀스는 볼 때마다 울컥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 포기하고 만 꿈들의 또 다른 미래가 평행우주처럼 펼쳐지는 장면이다. 노아 바움백의 에서 그레타 거윅이 추는 춤은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하고 싶은 사람의 꿈 같다. 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슬레이드(알 파치노)가 처음 만나는 여인 도나와 추는 탱고는 .. 2022. 11. 20. 당신얼굴 앞에서 얼마 전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이혜영 씨의 수상소감이 화제였다. 솔직하고 감동적이며 유머러스한 소감이었다. 수상소감의 모범이 될 만한 내용이어서 전문을 적어두고 싶다. 만약 수상소감을 말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이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홍상수 감독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심사위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제가 후보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수상소감을 생각했었는데요. 너무 많은 버전이 머리에 떠올라서 아직도 정리를 못했어요. 근데 핵심은 이거였던 거 같아요.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게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후회되고, 그냥 조용히 일어나서 극장 문을 나섰던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근데 이 는 제가 부끄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꼭 받고 싶었어요. 이.. 2022. 11. 19. 하트 오브 더 씨 오랫동안 살까말까 고민하던 빔 프로젝터를 드디어 샀다. 한적한 시골로 작업실을 옮긴 후 커다랗고 하얀 벽을 볼 때마다 ‘아, 저기는 프로젝터 쏘기 딱 좋은 벽이네.’라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 했나 모른다. 동굴 벽과 천장에 그림을 그리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피와 얼을 물려받은 후손답게 벽만 보면 뭔가 채우고 싶은 모양이다. 빔 프로젝터만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군대 훈련병 시절, 야외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임권택 감독의 반공 영화 중 하나였는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야외에서 동료와 함께 영화를 보던 순간은 또렷하게 떠오른다. 해가 진 이후 커다랗고 낡은 벽에 빔 프로젝터를 쏘았다. 허공을 꿰뚫는 빛과 그 속에서 부유하는 먼지를 보며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가 새삼 느꼈다. 뜬.. 2022. 11. 18. 메이의 새빨간 비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태초의 인간은 팔이 넷, 다리가 넷, 머리 하나에 얼굴이 둘이었다고. 앞뒤를 다 볼 수 있고, 팔과 다리가 넷이나 되니 도구를 쓰기도 수월했을 것이다. 인간은 완벽한 상태에서 행복했다. 신들의 걱정이 시작됐다. 너무나 완벽한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숭배하지 않을까, 인간이 인간을 숭배하지 않을까. 걱정쟁이 신들은 인간을 반으로 쪼갰다. 둘로 나뉘어진 인간은 영혼의 반쪽을 찾아서 비참하게 떠돌게 됐다는 이야기. 영혼의 반쪽을 만나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사랑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나뉘어진 반쪽이 멀리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속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아주 가끔 마음으로 밀려오는 완.. 2022. 11. 17. 코다 재미난 농담을 하나 들었다. “신이 방귀 냄새를 만드신 이유를 아니?” 아빠가 방귀를 뿡, 뀌더니 물었다. 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가 웃으면서 답을 말했다. “못 듣는 사람도 즐길 수 있으라고.” 딸은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고 있다.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코다(Coda)’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Children Of Deaf Adult)’의 준말이다. 농담을 했던 아빠는 농인이고 딸은 코다. 딸의 이름은 루비(에밀리아 존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아빠, 엄마, 오빠가 모두 농인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통역 역할을 도맡아 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기잡이배도 늘 함께 탔다. 어선을 운행하려면 무선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했.. 2022. 11. 16. 드라이브 마이 카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할 때면 며칠 전부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자동차에 시디 플레이어가 있었을 때엔 14곡 정도를 담은 시디를 여러 장 만들어두었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생기고 나서는 ‘드라이빙 뮤직’이라는 재생목록에 음악을 골라 담았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과속을 유발하면 곤란했고, 템포가 느려서 졸음을 부르는 곡도 제외했다. 시내 주행을 할 때는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는데 장거리 운전 때는 그러지 않았다. 비틀즈의 노래들이나 ‘더 킨크스(The Kinks)’ 같은 1960년대의 록큰롤, 1980년대의 뉴웨이브 음악 등이 자주 선곡됐다. 그러고보니 대부분 중고등학교 시절 자주 들었던 음악이다. 그 중에도 비틀즈의 ‘Drive My Car’만 나오면 운전 에너지가 상승하곤 했다. 비틀즈의 노래.. 2022. 11. 11. 카조니어 건축 전문 블로거인 제프 마노는 도시를 색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도둑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실제 도둑질을 하라는 게 아니라 ‘만약 내가 도둑이라면 저 건물에 어떻게 침입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건물을 보는 순간,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도둑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건축을 잘 이해하는 자들이다. 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무단으로 들락거리고, 건물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한계를 무시한다. (……) 건축물을 오용하고, 남용하고, 건축 목적과는 정반대로 이용함으로써 이들은 건물들의 ‘진짜’ 사용법을 밝혀낸다.” 그의 책 는 그런 마음을 실행에 옮겼던 도둑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은행을 털기 위해 실제 은행과 똑같은 모형을 3년 동안 제작했던 사람의 집념에는.. 2022. 11. 8. 피그 외식 전문 잡지의 기자로 일하면서 당황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추어탕 특집을 위해 하루 종일 추어탕만 먹다가 급기야 토할 뻔했던 순간,(다행히 토하지는 않았는데, 지금까지도 추어탕을 잘 못 먹는다) 와인 취재를 위해 프랑스 보르도에 갔을 때 시음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카메라를 떨어뜨렸던 순간,(수리비가 엄청 나왔다) 잦은 외식과 마감 스트레스와 폭식 때문에 몸무게가 최고점을 찍었던 순간 등이다. 신선했던 순간도 당연히 많았다. 새로운 식재료, 음식, 와인, 조리법의 신세계를 알아갈 때마다 놀라움이 컸다. 기자로 일하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당시는 한국 외식 산업의 전성기였다. 매일 새로운 스타일의 식당이 생겨나고, 오래된 식당이 문을 닫았다. 취재할 거리가 많았고, 공부해야 할 것도.. 2022. 11. 7. 페어웰 헤어질 때 어떤 인사를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다. “잘 가.” “조심해서 가.”처럼 상대방의 안전을 걱정해주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다음에 봐.” “곧 만나.”처럼 ‘조만간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는 인사도 있다. 어떤 사람과 헤어지는가에 따라서도 인사가 달라지는 것 같다. 연인과 헤어질 때면 다시 만날 시간을 손꼽게 되므로 “들어가서 연락해.” “헤어지기 싫다.”같은 깨소금 볶는 인사가 가능해지고, 조만간 만나기 힘든 사람과 헤어질 때는 “건강하세요.” 같은 인사를 하게 된다. 속뜻은 이렇다. ‘한동안 당신을 만나기 힘들 테니 알아서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물론, 상대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이런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장 몰인정한 인사.. 2022. 11. 4. 이전 1 2 3 4 ··· 9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