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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도구/밑줄 긋는 낮과 밤4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1. 칼 세이건과 앤 드류얀의 딸, 사샤 세이건의 책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를 읽었다. 인간 삶에 깃들어 있는 작은 의식들, 이를테면 '결혼', '성년', '속죄', '잔치와 금식' 같은 통과 의례들을 섬세한 눈길로 관찰한 책. 인문학적 자료들도 많이 들어 있고, 다양한 민족들의 색다른 의식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아버지 칼 세이건에 대한 기억과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샤 세이건 개인의 경험과 의식을 버무린 내용이 많은데, 개인의 경험에서는 아버지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사샤 세이건의 경험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좋은 교육자였는지 알 수 있다. 교육의 방향을 압축하자면 '방대한 우주와 자연현상에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2022. 10. 3.
너무 시끄러운 고독 내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치환의 시 을 안다. 시험에도 나왔던 것 같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이나 빨랫줄에 걸린 옷들을 볼 때마다 유치환의 시가 떠오른다. 동시에 국어 선생님의 해설도 떠오른다. “자, 여기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어떤 표현이죠? 아우성이 뭐예요? 여러분들처럼 떠들썩하게 기세를 올리면서 지르는 시끄러운 소리잖아요. 그런데 아우성이 소리가 없다는 게 말이 돼요, 안 돼요? 말이 안 되는 건 뭐다? 역설적인 표현이다. 모순이죠, 모순.” 노트에 그렇게 받아 적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은 역설적인 표현’.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면서 나는 늘 소리를 본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소리가 보인다. 어떤 .. 2022. 9. 25.
J.D.샐린저의 단편 <웃는 남자> 속 추장 (오래전에 쓴 글인데, 어디에 쓴 글인지는 기억이.......) 책을 체계적으로 모아두는 편이 아니다. 내 방에는 늘 정리 안된 책들이 전쟁터의 시체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김중혁 병장님, 저는 글렀어요. 포기하세요. 저를 버리고 가세요.”라는 책들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다. (“제군들, 그러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네”) 어떻게든 정리를 해보고 싶지만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소설을 읽은 몇몇은 내가 대단한 수집가일 것이며 정리도 엄청나게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 그래,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 ‘저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잡지사 기자 여러분! 제 방에는 대단한 컬렉션도 없고, 희귀한 수집품도 없을 뿐더러 기자님들이 발 디딜 공간조차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2022. 9. 18.
루시아 벌린의 첫 인상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많은 연예인들이 지금은 친해진 동료들의 첫인상에 대해 말할 때가 있다. “첫인상은 참 별로였어요.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죠.” “엄청 새침 떠는 애로 생각했죠. 그런데 말을 나눠보니까…….” “아,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구나, 흥, 나도 뭐 관심 없다고…….” 첫인상이 좋았다는 건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예능에는 반전이 있어야 하니까,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알고보니 속 깊은 사람, 무섭게 생겼지만 다정한 사람, 이런 이야기가 더 재미있으니까. 첫인상이 실제와 달랐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우리의 첫인상이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편견은 힘이 세다. 첫인상이란 수많은 조건들 중에 어떤 요소로 우연히 결정되는 거지만 우리는 우리의 첫인상을 무한 신뢰한다. 나는 ..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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