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칼 세이건과 앤 드류얀의 딸, 사샤 세이건의 책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를 읽었다. 인간 삶에 깃들어 있는 작은 의식들, 이를테면 '결혼', '성년', '속죄', '잔치와 금식' 같은 통과 의례들을 섬세한 눈길로 관찰한 책. 인문학적 자료들도 많이 들어 있고, 다양한 민족들의 색다른 의식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아버지 칼 세이건에 대한 기억과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샤 세이건 개인의 경험과 의식을 버무린 내용이 많은데, 개인의 경험에서는 아버지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사샤 세이건의 경험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좋은 교육자였는지 알 수 있다. 교육의 방향을 압축하자면 '방대한 우주와 자연현상에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으며,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것.
2.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택시 기사' 이야기. 사샤는 남편 존과 택시를 탔는데 정신 산만하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기사를 만났다. 되는 일도 별로 없고 고민 많던 부부는 흥 많은 택시 기사가 부담스러웠는데, 택시 기사는 두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보라는 제안까지 한다. 노래를 못 부른다고 하자 "둘이 같이 노래 해야 해요!"라며 강경하게 밀어붙인다. 결국에는 택시 기사가 노래를 시작하고 이어 부르라고 말한다. 그 노래는 바로, A - B - C- D ... 알파벳 송.
두 사람은 억지로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는데, 택시에서 내린 이후 사샤의 삶이 조금 바뀌게 된다.
그 택시를 탄 뒤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존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존이 직장을 옮기면서 우리는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이사했다. 아기도 낳았다. 그렇지만 알파벳 노래는 여전히 계속된다. 우리는 주말마다 그 노래를 부른다. 보통 토요일 아침에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부른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추는 게 신호다. 그러고 같이 노래를 부른다. 서로 열렬히 사랑할 때도, 서로에게 화가 났을 때도, 어디 가야 해서 정신없이 바쁠 때도 노래를 부른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전화로 부른다.
... (중략)
알파벳 노래가 누구한테나 적합할지는 모르겠다. 사실 엄청 우스꽝스러운 노래라 약간 바보같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택시를 탄 지 5년이 지난 지금은 바로 그게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고 유대감이 생기고 자신을 연약한 존재로 느끼게 되고 그래서 특별하다.
3.
선한 기운으로 가득한 책이다. 고통이나 그리움이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지금 이 삶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하다. 추천사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한 말이 적절한 표현 같다. "삶의 기쁨으로 진동하는 사랑스러운 책." 지금 이곳에 없는 누군가가 몹시 그립다면, 삶의 의미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면, 이 책을 권할 수도 있겠다.
4.
좋아하는 대목.
아버지는 1906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쓴 적이 없다. 이메일 주소도 없었다. 가끔 아버지한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상상을 한다. 이 작은 직사각형 기계 안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스물 몇 권, 셰익스피어 전집, 세계 지도가 통째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걸로 듣고 싶은 노래 전부 들을 수 있고 읽고 싶은 책 전부 읽을 수 있다고. 이 기계가 날씨도 알려주고, 뉴스 속보도 알려주고, 알바니아어나 우르두어로 대화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몇 번 두들기기만 하면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휴가 사진을 구경할 수도 있다고. 아버지는 틀림없이 좋아하셨을 것이다.
- 저자
- 사샤 세이건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21.06.04
#사샤세이건 #홍한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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