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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계단/영화 리뷰

이준익 감독 영화의 대사가 감동적인 이유

by 김중혁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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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잠잠했던 88년도 가수왕 최곤. 매니저 속도 모르고 또 사고 치다. 명곡 '비와 당신'으로 88년 가수 왕을 차지했던 최곤은 그 후 대마초 사건, 폭행사건 등에 연루돼 이제는 불륜커플을 상대로 미사리 까페촌에서 기타를 튕기고 있는 신세지만, 아직도 자신이 스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조용하나 싶더니 까페 손님과 시비가 붙은 최곤은 급기야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되는데…일편단심 매니저 박민수는 합의금을 찾아 다니던 중 지인인 방송국 국장을 만나고, 최곤이 영월에서 DJ를 하면 합의금을 내준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라디오 DJ로 컴백한 철없는 락스타의 겁없는 방송이 시작된다. 프로그램 명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하지만 DJ자리를 우습게 여기는 최곤은 선곡 무시는 기본, 막무가내 방송도 모자라 부스 안으로 커피까지 배달시킨다. 피디와 지국장마저 두 손 두발 다 들게 만드는 방송이 계속되던 어느 날, 최곤은 커피 배달 온 청록 다방 김양을 즉석 게스트로 등장시키고 그녀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방송은 점차 주민들의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성공에는 또 다른 대가가 있는 법… 서로 눈빛만 보아도 알 것 같은 두 남자 때문에, 오늘 전국이 울고 웃는다.
평점
9.3 (2006.09.27 개봉)
감독
이준익
출연
박중훈, 안성기, 최정윤, 정민준, 이성우, 정재환, 황현성, 윤주상, 정규수, 정석용, 안미나, 김지헌, 강산, 김장훈, 임백천, 신정근, 전기광, 이준익, 유채목, 김탄현, 김광식, 이재은, 조경훈, 우혜진, 조련
 
황산벌
백제 VS 신라, 계백 VS 김유신, 5천 VS 5만택도 없는 땅 따먹기, 역사적 맞짱뜨기 돌입!!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660년, 딸의 원수인 백제‘의자왕’에게 앙심을 품은 ‘김춘추’(태종 무열왕)는 당나라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김유신’ 장군에게 당나라의 사령관인 ‘소정방’과의 협상을 명령한다. 나이로 밀어부치려던 ‘김유신’. 불과 몇 년 차이로‘소정방’에게 밀리게 되고, 결국 7월 10일까지 조공을 조달해야 한다. 덕물도 앞바다까지 조공을 운반하기 위해선 백제군을 뚫어야 하는데, 백제에는‘김유신’의 영원한 숙적‘계백’장군이 버티고 있으니... 당나라 배들이 서해 덕물도 앞바다에 닻을 내리자 백제‘의자왕’과 중신들은 긴장한다. 고구려를 치러 가는 것일 거라고 애써 자위하던 그들은 신라군이 남하하여 탄현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에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려는 것임을 확인하며 불안에 휩싸인다. 그러나, ‘의자왕’에게 적개심을 품은 중신들은 자신들의 군사를 내 주지 못하겠노라 엄포를 놓고, ‘의자왕’은 자신의 마지막 충신 ‘계백’장군을 부른다. 무언의 술 다섯 잔 속에 ‘의자왕’으로부터 황산벌 사수를 부탁받은 ‘계백’은 목숨 바쳐 싸우기 위해 자신의 일족까지 모두 죽이고 황산벌로 향하는데... 욕싸움, 인간장기 게임을 넘나드는 5천 백제군과 5만 신라군의 전투는 의외로 4전 4패로 백제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당나라와 약속한 7월 10일이 다가온다. 마지막 전투의 승리를 위해 ‘김유신’은 병사들의 ‘독기 진작’을 위한 ‘화랑 희생시키기’ 전략을 마지막 카드로 내미는데... 과연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평점
7.8 (2003.10.17 개봉)
감독
이준익
출연
박중훈, 정진영, 이문식, 오지명, 이원종, 김선아, 김병서, 김승우, 김윤태, 신현준, 전원주, 고목춘, 이호성, 안내상, 류승수, 신정근, 전기광, 정성화, 전대병, 김육룡, 김만수, 이지흥, 김광식, 김탄현, 우현, 양진우, 조달환, 고규필, 공유석, 박수현, 이상훈, 김운하, 조경훈, 손진호, 오상무
 
박열
"조선인에게는 영웅, 우리한텐 원수로 적당한 놈을 찾아."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그들이 원하는 영웅이 돼줘야지"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사형까지 무릅쓴 역사적인 재판을 시작하는데.... 조선인 최초의 대역죄인! 말 안 듣는 조선인 중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상 초유의 스캔들! 그 중심에 '박열'이 있었다!
평점
8.0 (2017.06.28 개봉)
감독
이준익
출연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 야마노우치 타스쿠, 요코우치 히로키, 김수진, 김준한, 권율, 박기륭, 민진웅, 백수장, 한건태, 정준원, 윤슬, 배제기, 최정헌, 박성택, 시바타 요시유키, 김강일, 도용구, 이영석, 마츠다 요지, 조하석, 윤대열, 이정현, 김리우, 오상윤, 류승국, 달시 파켓, 김우진, 위하준, 김희상

새로운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어떤 소설인가요?”나 “소설의 줄거리가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다. “직접 읽어보시지요.”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무책임한 말 같고, 인터뷰를 하는 작가로서의 직무 태만 같기도 해서 어떻게든 설명해보려고 애쓴다. 내가 쓴 소설이고, 소설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설명만 하려 들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 많이 알아서 그렇다. 작가는 소설로 쓰여진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버려진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고, 쓰려다 만 이야기도 알고 있고, 차마 쓰지 못했던 이야기조차 알고 있다. 독자가 읽은 소설의 줄거리가 1에서 시작해 5로 끝나는 이야기라면, 작가는 -8부터 12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다. 정리해서 설명하는 게 힘들 수밖에 없다.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소설가가 있다면 한번 시험해보길 바란다. “당신의 최근작 줄거리를 50자 이내로 요약해주세요.”라고 요구해보시라. 십중팔구는 말을 더듬다가 포기하고 말 것이다.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자신의 소설로 가득 차고 마는 것이다. 중앙정보처리장치(CPU)가 짧은 시간에 마비된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잘라내는 사람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는 머릿속으로 이야기의 살을 계속 붙여나가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해두었던 모든 이야기를 해체해야 한다. 머릿속에 가득 찼던 거대한 이야기의 군살을 제거하고, 뼈를 발라내고, 독자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가끔은 일부러 먹기 나쁜 크기로) 분리한 다음 잘 포장해서 내놓는 게 소설가의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소설가도 있을 것이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가 그런 소설일까? 그는 타자지를 길게 이어 붙여 만든 약 40미터의 종이 위에다 3주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하지만 잭 케루악도 소설을 완성한 후에 여러차례 수정을 가했다. 머릿속에서 하든 종이 위에서 하든 잘라내기는 마찬가지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플레이어>에는 시나리오 작가들로부터 초안을 듣고 흥행 여부를 판단하는 그리핀 밀(팀 로빈스)이 등장한다. 작가들은 그의 책상 앞에서 자신의 머릿속 모든 이야기를 서너 줄로 요약해내야 한다. 그에게 ‘작가들의 이름으로 널 죽이겠다’는 협박편지가 도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만 페이지의 내용을 서너 줄로 압축했는데, 퇴짜를 맞은 작가는 그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에게 복수의 역할을 맡긴다면 그리핀 밀을 죽이는 대신 골방에 가둔 다음 수십만 페이지의 시나리오를 읽게 만들 것이다. 읽어도 읽어도 절대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들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보고, 줄거리가 아닌 한 줄의 대사가 영화 전체를 설명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조선인 최초의 대역죄인이자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이었던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다룬 <박열>에서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준 대사는 영화와 별반 상관없어 보이는 한 마디였다. 가네코 후미코는 감옥에 갇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그 글을 전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시적인 문구나 형용사는 쓰지 말아줘.”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삶을 미화하지도 말고, 없던 이야기를 덧붙이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짧은 대사로 전했고, 이준익 감독은 그 대사를 자신의 영화 스타일로 삼았다. 감독은 오랫동안 자료를 조사했고, 사실과 다르지 않은 영화를 찍기 위해 고심했다.

 

이준익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대사에 밑줄을 자주 긋는다. 강조할 곳은 확실하게 강조한다. 관객에게 친절하다 말할 수도 있고, 그리핀 밀 앞에서 핵심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본 사람이라면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왕년의 스타 최곤(박중훈)에게 하는 대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빛을 받아서 내는 거야, 대부분.” 관객은 박민수의 말을 듣는 즉시 ‘라디오 스타’라는 제목의 의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영화 <황산벌>에서는 계백 처(김선아)가 함축적인 말로 주제를 일갈한다. “호랑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거여, 이 인간아.” 이보다 훌륭한 영화 소개가 또 있을까. 우리의 상식과 다른 전쟁, 가죽과 이름이 남지 않는, 자신의 명분 때문에 죽음을 재촉하는 우매한 인간의 전쟁을, 죽음 앞에 선 계백의 처가 비웃는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매번 감동하는 것은 무엇보다 등장인물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역사를 다루더라도 그 속의 인간부터 다룬다. 철학자 존 그레이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인류의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인생은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각 인생들의 알 수 없는 총합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삶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의 삶은 비참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속 한 줄 대사들이 감동적인 이유 역시 어느 순간 인류의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듯한 감각을 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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