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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계단/영화 리뷰

제보자의 신원은 백퍼 보장해 드립니다

by 김중혁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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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제가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이유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이장환’ 박사의 연구 결과가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PD추적 ‘윤민철’ PD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전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얼마 전까지 ‘이장환’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해오던 ‘심민호’ 팀장은 ‘윤민철’ PD에게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줄기세포 실험 과정에서 벌어진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양심 선언하게 된다. 이 방송 꼭 내보낼겁니다. 제보자의 증언 하나만을 믿고 사건에 뛰어든 ‘윤민철’ PD는 ‘이장환’ 박사를 비판하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는 여론과 언론의 거센 항의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결국 방송이 나가지 못하게 되는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2014년 10월 2일, 대한민국을 뒤흔든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의 실체가 밝혀진다.
평점
7.9 (2014.10.02 개봉)
감독
임순례
출연
박해일, 이경영, 유연석, 박원상, 류현경, 송하윤, 김강현, 김중기, 남명렬, 박용수, 박진영, 이승준, 김수안, 장광, 권해효, 최용민, 한기중, 김원해, 이미도, 김영재, 황정민, 이승준, 황재원, 윤민수, 박지소, 김영, 장문규, 김대흥, 이화룡, 최교식, 희정, 김지훈, 권혁, 박성현, 김승태, 허웅, 남진복
 
스포트라이트
세상을 바꾼 최강의 팀플레이!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더욱 굳건히 닫히는 진실의 장벽. 결코 좌절할 수 없었던 끈질긴 ‘스포트라이트’팀은 추적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나는데… ‘스포트라이트’팀이 추적한 충격적인 스캔들이 밝혀진다!
평점
8.5 (2016.02.24 개봉)
감독
토마스 맥카시
출연
마이클 키튼,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리브 슈라이버, 존 슬래터리, 스탠리 투치, 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 더그 머레이, 제이미 쉐리던, 엘레나 월, 닐 허프, 빌리 크루덥, 듀안 머레이, 브라이언 챔버레인, 마이클 시릴 크라이튼, 폴 가일포일, 마이클 컨트리맨, 개리 갈론, 로버트 B. 케네디
 
대통령의 음모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인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과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는 어느 날 우연한 절도 사건에 엄청난 정치적인 음모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고분분투한다. 결국 그 사건은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비화되었고 현직 대통령이었던 닉슨이 사임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평점
8.9 (1976.01.01 개봉)
감독
알란 파큘라
출연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레드포드, 잭 워든, 마틴 발삼, 할 홀브룩, 제이슨 로바즈, 제인 알렉산더, 메레디스 백스터, 네드 비티, 스티븐 콜린스, 페니 풀러, 존 맥마틴, 로버트 월덴, F. 머레이 아브라함, 데이빗 아킨, 도미닉 치아니즈, 브라이언 클락, 니콜라스 코스터, 린지 크루스, 발레리 커틴, 진 디나르스키, 리처드 허드, 폴리 할리데이, 제임스 카렌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고충은 더욱 커졌다. 고전 소설에서 긴장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정보’와 ‘거리’다. ‘누가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는가, 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며, 거리는 얼마나 먼가.’ 그런 이유로, 소설가는 사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주인공을 데려다놓기도 한다.

 

휴대전화 때문에 모든 게 망했다. 주인공들에게 휴대전화를 쥐어주고 싶은 소설가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정체 모를 전파를 받은 후 수신자를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셀> 같은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은 제외해야겠다.) 주인공은 중요한 정보를 가장 늦게 알아야 하고, 힘들게 알아야 한다. 휴대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직접 들어야 한다. 휴대전화 때문에 주인공을 속이기 힘들어졌다. 소설의 허점을 발견한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냥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되는 거 아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이걸 모른다는 게 말이 돼?”

 

글을 쓴다는 공통점말고는 소설가와 하나도 닮은 게 없는 것 같은 기자들에게 휴대전화는 축복에 가까운 도구일 것이다. 수년 전 신문사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는데, 기자들에게 전화기가 얼마나 중요한 도구인지 새삼 알게 됐다. 취재원과의 전화 통화는 물론 전화벨 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며, 휴대전화로 기사를 직접 불러주기도 하고, 전화기를 녹음기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일을 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지금은 휴대전화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소설가는 주인공과 정보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려 한다면, 기자들은 멀리 있는 정보를 최대한 빨리 끌어들이려는 사람들이다. 전화는 거리를 단축시켜주고, 정보를 압축해주며,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기자들을 다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이 전화기인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사건에 대해 제보를 하려면 전화를 걸어야 한다. 취재를 하려면 전화를 걸어야 한다. 기자 영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대사는 “나 없는 동안 전화 좀 받아줄래요?”다. 1972년에 있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1976년에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가 1973년에 만들어졌고, 상용화된 것은 1980년대였으니 당연히 영화에 휴대전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휴대전화가 없기 때문에 신문사 내부의 장면이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 브로드웨이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조지 젠킨스는 실제 <워싱턴 포스트> 신문사 내부를 모델로 정교한 세트를 만들었고, 기자들은 거리를 뛰어다니는 것처럼 신문사 내부를 종횡무진 움직인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전화를 받아야 하니까. 큼지막한 제보를 기다려야 하니까.

 

그로부터 39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2002년 가톨릭 교단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02년이면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을 때인데도,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전화는 유선전화다. 기자들은 휴대전화를 쓰는 대신 직접 탐문하고, 누군가의 제보를 기다리고, 뛰어다니며 취재를 한다. 기자들끼리 아주 은밀한 정보를 주고받을 때에만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전화기 쓰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시나리오 작가의 고충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소품으로 반드시 등장해야 하지만, 중요한 대사를 휴대전화기에게 맡기지는 않는다. 중요한 이야기는 반드시 얼굴을 보고, 표정을 보며 이야기해야 한다. 전화기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던 <스포트라이트>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아동 성추행 스캔들이 보도된 직후 신문사로 수많은 제보 전화가 걸려온다. 팀장 윌터가 전화를 받으면서 “스포트라이트 팀입니다.”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한국 영화 중에서 기자의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낸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 역시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네, 어디시라고요? 제보자의 신원은 100퍼센트 보장해드리니까 걱정 마시고요.” 기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특성상 주인공은 정보를 가장 늦게 알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주인공이 기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자는 계속 정보를 뒤쫓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그 지점을 계속 뒤로 미룬다. <제보자>의 주인공은 후배 기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보가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세상이 이 모양이 됐겠냐.” 기자들은 계속 기다린다. 전화가 오기를, 제보가 오기를, 새로운 정보가 도달하기를. 2017년을 경험한 한국 사람들이라면 기자에 대한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레기’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직업인이었지만,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버텼을,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기다렸을, 그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누군가 전화기 앞에 앉아서 우리들의 제보를,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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