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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계단/영화 리뷰

포드 V 페라리

by 김중혁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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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택일은 인간의 숙명이다. 이거냐, 저거냐, 골라, 골라,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 죽을 때까지 계속 서게 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던 햄릿부터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언제나 행복한 갈등중인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인간 앞에는 언제나 두 갈래 길이 펼쳐진다. 화장실에 나타나는 귀신은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휴지는 하얀색이 진리 아닙니까, 귀신님?)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주인공은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빨강과 파랑이 믹스 앤드 매치 된 알약이 그렇게 예쁘던데…….)

양자택일을 놀이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터넷의 커뮤니티에는 양자택일 질문으로 가득하다. “이소룡과 타이슨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시대 초월적인 질문부터 “아프면서 200살 살기 대 몸 건강하게 80살 살기” 같은 존재론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생성해낸다. 이쯤 되면 인간이 양자택일을 몹시 사랑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모든 일에 두 개의 답만 있을 리 없지만 우리는 요약해서 고민하기를 좋아한다. 오지선다보다는 양자택일이 쉬워 보인다. 하나만 포기하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으니까. 나는 양자택일의 방법으로 고민을 해결할 때가 많다. 1번부터 8번까지의 고민이 있다고 치자. 한꺼번에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는 없으므로 가장 커다란 고민 두 개를 뽑아낸 다음 둘 중 어떤 걸 먼저 해결할지 결정한다. 반대의 방법을 쓸 때도 있다. 가장 사소해 보이는 고민 두 개를 뽑아낸 다음 둘 중 하나를 해결한다. 고민을 간추리고 요약하고 무거웠던 머리를 가볍게 하는 데 양자택일만큼 좋은 게 없다. 나에게는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양자택일을 자주 이용한다. 드라마 속의 삼각관계란 결국 ‘이 사람과 저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를 보게 하기 위한 장치다. 우리는 둘 중 한 사람을 응원하며 사랑이 이뤄지길 바란다. 시청률을 올리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장치가 없다.

흔히 사용하는 ‘라이벌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타고난 천재 1인자와 성실한 노력형 2인자 중 우리는 한 사람을 골라서 응원한다. 우리가 둘 중 누구를 응원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할 수 있고, 삶의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다. 라이벌은 사람으로 포장된 두 개의 과녁인 셈이다. <보리 vs. 매켄로>, <러시 : 더 라이벌> 같은 스포츠 라이벌 영화에서부터  시인 윤동주와 시인 송몽규를 훌륭한 라이벌로 묘사한 <동주>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라이벌 영화는 무척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벌 영화는 <포드 V 페라리>다.

<포드 V 페라리>의 라이벌은 제목과 달리 자동차 회사 ‘포드’와 ‘페라리’가 아니다. 라이벌로 묘사하기보다 대놓고 한쪽 회사 편을 든다. 1960년대 매출 감소에 빠진 자동차 회사 포드는 스포츠카 레이스의 절대 1위 페라리와의 인수 합병을 추진한다.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계약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엔초 페라리’로부터 모욕까지 당한 ‘헨리 포드 2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그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박살낼 차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영화 내내 헨리 포드 2세는 명예와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엔조 페라리는 자동차의 장인으로 묘사한다. 애초에 라이벌이 될 수가 없다. 기울어도 너무 기운다. 진짜 라이벌은 헨리 포드가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 고용한 두 사람,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이다.

캐롤 셸비는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이지만 더이상 레이싱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캐롤 셸비는 자동차에 미친 켄 마일스를 끌어들인다. 두 사람은 르망 레이스에서 포드를 우승시키기 위해 힘을 모은다. 두 사람이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을 하는지 못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도 쉽게 알 수 있으니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부연하자면, <포드 V 페라리>는 2020년에 본 영화 중에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자동차 음향도 끝내주고, 연기는 말할 나위도 없고, 감동도 있는 데다 대사도 무척 좋다. “뭐 재미있는 영화 없어?”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무조건 이 영화를 추천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애들처럼 치고박고 싸우지만 단 한번도 공통의 목표를 벗어난 적이 없다. 늘 같은 편이다. 목적지로 가는 방법이 달라서, 의견 차 때문에 싸우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재능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도 않는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음모를 꾸미지도 않는다.

우리는 ‘라이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다. 질투하고, 승리에 집착하고, 대립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라이벌로 생각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라이벌은 그런 의미다. 이겨야 하는 상대를 라이벌로 생각한다.

포드의 간부들은 자신들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고집불통 켄 마일스를 껄끄러워 했다. 그때 캐롤 셸비는 켄 마일스를 두둔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뭐냐고 물었죠? 운전대 뒤에 있는 순수한 레이서. 그게 바로 켄 마일스예요.”

캐롤 셸비는 켄 마일스의 재능을, 순수함을, 자동차에 대한 사랑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것은 자신이 더이상 가질 수 없는 재능이었다. 켄 마일스도 마찬가지다. 켄 마일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데, 그건 캐롤 셸비의 삶을 존중하는 선택이었다. 능글맞아 보이고 말만 번드르르하게 잘하는 자동차 딜러처럼 보이는 캐롤 셸비의 밑바닥에 있는 자동차에 대한 애정을 켄 마일스는 끝까지 존중했다.

두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인정했고, 상대방의 재능을 존경했다. 팀을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었고, 함께 바라본 목표를 위해 자신의 궤도를 조금 수정했다. 켄 마일스가 아들에게 하는 자동차에 대한 설명은, 삶에 대한 은유 같다.

“빨리 달리면 차의 속도는 올라가지만 나머진 모두 느려져……. 기계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버텨주길 바라려면 한계가 어디인지 알아야 해. 퍼펙트 랩은 존재해. 대부분은 존재도 모르지만 분명히 있어.”

퍼펙트 랩이란 레이스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코스를 최상의 실력으로 달리는 것이다. 삶에서 모든 순간에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최고의 스피드, 최고의 코너워크, 최고의 가속, 최고의 제동으로 완벽한 ‘한 바퀴’를 돌 수 있을까?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하루를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의 한계를 알면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다고 켄 마일스는 믿는다.

케롤 셸비와 켄 마일스를 계속 대비시키는 이유는, 우리에겐 두 사람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우리에겐 캐롤 셸비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어딘가에 몰두할 때, 우리는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켄 마일스의 순수함이 필요하다.

포드와 페라리의 역할 역시 그렇다. 헨리 포드 2세를 바보로 만드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포드와 페라리 모두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포드도 소중하고, 자동차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페라리도 필요하다. 세상에는 사업가도 필요하고 장인도 필요하다.

자극적인 라이벌 스토리는 어느 한쪽에 감정이입하여 선택할 것을 강요하지만, <포드 V 페라리>는 두 사람 모두에게 감정이입하도록 만든다. 양자택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모든 순간에 선택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보기가 두 개일 때 답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답은 네 개일 수 있다. 1번, 혹은 2번, 혹은 1번과 2번, 혹은 답 없음.

 

 

 
포드 V 페라리
자존심을 건 대결의 시작! 1960년대, 매출 감소에 빠진 ‘포드’는 판매 활로를 찾기 위해 스포츠카 레이스를 장악한 절대적 1위 ‘페라리’와의 인수 합병을 추진한다. 막대한 자금력에도 불구, 계약에 실패하고 엔초 페라리로부터 모욕까지 당한 헨리 포드 2세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박살 낼 차를 만들 것을 지시한다. 불가능을 즐기는 두 남자를 주목하라! 세계 3대 자동차 레이싱 대회이자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 출전 경험조차 없는 ‘포드’는 대회 6연패를 차지한 ‘페라리’에 대항하기 위해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를 고용하고, 그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지만 열정과 실력만큼은 최고인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를 자신의 파트너로 영입한다. 포드의 경영진은 제 멋대로인 ‘켄 마일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레이스를 펼치기를 강요하지만 두 사람은 어떤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불가능을 뛰어넘기 위한 질주를 시작하는데… 2019년, 그 어떤 각본보다 놀라운 실화가 펼쳐진다!
평점
8.6 (2019.12.04 개봉)
감독
제임스 맨골드
출연
맷 데이먼, 크리스찬 베일, 카이트리오나 발페, 존 번달, 조쉬 루카스, 제이제이 페일드, 노아 주프, 레이 맥킨넌, 아담 메이필드, 트레이시 레츠, 이안 하딩, 월리스 랭햄, 조나단 라팔글리아, 마리사 페트로로, 워드 호튼, 브래드 베이어, 잭 맥멀런, 레모 지론, 크리스토퍼 다가, 벤 콜린스, 벤저민 릭비, 숀 캐리건, 조 윌리엄슨, 티파니 이본느 콕스, 다린 쿠퍼, 와이엇 내쉬, 로베르타 스파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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