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생각하면 수줍은 미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죽은 시인의 사회>나 <굿 윌 헌팅> 같은 작품들 때문에 생겨난 이미지겠지만, 실제 모습을 알 수 없는 우리들은 로빈 윌리엄스를 그 미소와 함께 기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만, 배우들은 표정을 남기고 사라진다.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사랑의 기적>(Awakenings)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표정이 하나 있다.
<사랑의 기적>은 어릴 때 뇌염을 앓고 그 후유증으로 30년 넘는 시간 동안 정신이 잠들어 있던 레너드 로우(로버트 드 니로)와 기적처럼 레너드 로우를 깨우고 그와 친구가 되는 의사 말콤 세이어(로빈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한국어 제목은 ‘사랑의 기적’이지만 원제는 ‘깨어남’이다. 30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레너드는 모든 현실이 낯설기만 하다. 스무 살 때 의식의 마비가 시작된 탓에 전기 면도기를 만져보는 것도 처음이고, 여자친구는 사귀어본 적도 없으며, 젊음을 송두리째 건너뛴 주름진 얼굴은 낯설기만 하다. 그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에는 감탄이 절로 난다. 온몸에 들이닥친 경련을 표현하는 연기도 놀랍지만, 30년 만에 만나는 엄마를 볼 때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참으로 놀라웠다.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 역시 놀라운 디테일로 가득했다. 오랫동안 지렁이만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연구원을 연기해야 했는데, 일상 생활에서의 어리숙한 모습이라든지 환자들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의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 이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세이어 박사는 실제 모델이 있다. 바로 원작 <깨어남>을 쓴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울프 색스(Oliver Wolf Sacks)다. 올리버 색스는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에 무척 난처해했다.
“처음에는 내 모습을 살아 있는 거울에 비춰 본다는 것이 으스스하고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 있는 자세며 억양, 손짓과 몸짓, 모든 것이 똑같아서 마치 있지도 않은 일란성쌍둥이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표면적인 모방은 이내 배우 안에서 배우 자신의 것으로 체화되어 훨씬 심오한 나의 초상으로 바뀌었다. 아니, 어쩌면 나를 관찰한 결과물만이 아닌 그만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더하여 창조된, 절반은 로빈에 절반은 나로 이루어진 인물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로빈도 나도 아닌, 새로운 생명과 성격의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대로, 올리버 색스는 무척 수줍은 사람이었다. 올리버 색스의 첫 번째 친구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였다. 여섯 살에 숫자와 친구가 됐고, 열 살 때는 원소와 광물을 사랑하게 됐으며, 사람과 인간성에 대한 탐구는 성인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원소 주기율표를 너무 좋아해서 식탁보나 담요로 사용하고,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다니듯 주기율표를 지갑에 넣어 다녔고, 매년 생일 선물로 자신에게 원소를 하나씩 선물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었으며 편두통에 시달렸고, 집안에 자신만의 실험실을 만들어 그 속에 자주 파묻혔다. <사랑의 기적>에서 원소 주기율표를 설명하는 세이어 박사를 보고 있으면, 올리버 색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세이어 박사는 원소 주기율표에 대한 애정을 늘어놓다가 이렇게 덧붙인다.
“모든 원소에게 제자리가 있어요. 바꿀 수 없죠. 무슨 일이 있어도 불변이죠. 저는 대인 관계에 서툴러요. 사람을 좋아하죠. 사람들에 대해 좀더 깊이 알고 싶긴 해요. 사람들이 좀더 예측 가능하면 좋을 텐데…….”
‘사람들이 좀더 예측 가능하면 좋겠다’는 부분을 연기할 때 로빈 윌리엄스는 커피잔을 든 채 몸을 웅크리고 부끄럽다는 듯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표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인 관계에 미숙하여 마냥 수줍고, 한편으로는 불가해한 세상에 난처해 하고, 끝내 어깨를 당당하게 펴지 못하는 로빈 윌리엄스의 표정은, 자꾸만 생각난다.
다큐멘터리 영화 <올리버 색스: 그의 생애>에서 그 표정을 다시 보았다. 올리버 색스 역시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증스럽구나.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올리버 색스는 그 말을 평생 기억했다. 올리버 색스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저도 호모포비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저에 대한 것이지만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말을 하는 올리버 색스의 표정에서 수줍음과 난처함이 보였고, 로빈 윌리엄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올리버 색스는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 ‘나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두렵지 않은 척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감사입니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 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받았고, 또 받은 것을 돌려주었습니다. 책을 읽었고, 여행했고, 생각했고, 썼습니다. 세상과 교감했고, 작가와 독자로 특별한 교감을 이뤘습니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나는 느끼는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로 살아왔으며, 그 자체로 그것은 커다란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올리버 색스: 그의 생애>에서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이 말들은 마음속에서 크게 울린다. 그가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고통 속에서도 얼마나 굳건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랑의 기적>의 원작이 된 책 <깨어남>을 발표했을 때,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동료 학자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했고, 따돌림당했고, 누구도 그의 연구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1920년대 전 세계를 휩쓴 ‘수면병(기면성뇌염)’에 걸려 시체처럼 얼어붙은 환자를 만나고, 신약 ‘엘도파(L-dopa)’를 그들에게 투약하고, 환자들이 하나 둘 깨어나게 되고, 그러나 곧이어 특정한 부작용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올리버 색스는 환자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관찰했고, 지켜보았고, 기록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사람들이 그의 관찰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올리버 색스는 환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과 기록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해요. 우리 이야기를 해줘요. 안 그러면 영영 알려지지 않을 테니까요. 우릴 찍어요. 우리가 직접 말할게요.”
로빈 윌리엄스는 배우로서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모방하여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냈다. 올리버 색스는 환자들에게 깊이 다가가 그들의 삶과 병을 관찰했고, 그것들을 기록했고, 책으로 썼다.
“저는 그저 관찰합니다. 그렇지만 단순한 관찰 같은 건 없습니다.”
올리버 색스는 말했다.

- 평점
- 8.0 (2021.08.26 개봉)
- 감독
- 릭 번스
- 출연
- 올리버 색스, 빌 헤이스, 케이트 에드거, 로렌스 웨슐러, 조나던 밀러
- 저자
- 올리버 색스
- 출판
- 알마
- 출판일
- 201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