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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계단/영화 리뷰54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인간은 누구나 1인칭으로 살아간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다. 겨우 짐작할 뿐이다. 짐작이라도 해보려는 시도 덕분에 우리는 간신히 연결되어 살아간다. ‘짐작(斟酌)’이라는 한자어는 술과 관련돼 있다. 속이 보이지 않는 술병으로 술을 따를 때, 우리는 그 양을 가늠하기 힘들다. ‘짐(斟)’은 ‘술 따르다’는 의미지만 ‘머뭇거리다’라는 뜻도 된다. 술병을 많이 기울이면 술이 왈칵 쏟아지고, 술병을 완만하게 기울이면 술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머뭇거리면서, 술병을 조금씩 기울여가면서, 타인의 마음에 든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어림잡아 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고 지냈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뜻일까. 그 사람의 취향이나 .. 2022. 10. 20.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은 것이 하나 있다. 허비 행콕은 마일스 데이비스, 론 카터, 웨인 쇼터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들과 함께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곡 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피아노 코드를 잘못 연주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허비 행콕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알아차리고 얼음처럼 굳어버렸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잠깐 멈추더니 허비 행콕이 잘못 연주한 코드에 어울리는 트럼펫 솔로를 이어서 연주했다. 허비 행콕은 음악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순발력에 감탄했고, 이런 깨달음도 얻게 됐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내가 ‘잘못(wrong)’ 연주한 소리를 ‘올바른(right)’ 소리가 되도록 바꿔놓았어요. 마일스는 내 실수를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공연 중에 일어날 수 .. 2022. 10. 19.
더 파더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는 세상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 푸네스가 주인공이다. 그의 기억력은 기적에 가깝다. 평범한 인간들이 탁자 위의 유리컵을 지각하는 동안, 푸네스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모든 잎사귀들과 가지들과 포도알들의 수를 지각한다. 푸네스는 1882년 4월 30일 새벽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들의 형태를 기억한다. 물결들의 모양을 기억하고, 꿈을 복원할 수 있으며, 하루를 통째로 되돌이켜 기억할 수 있다. 이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기억력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때문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란 인터넷으로 연결된 초대형 고성능 컴퓨터에 콘텐츠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서비스다. ‘구름(Cloud)’이라는 형체 없는 곳에다 데이.. 2022. 10. 18.
자산어보 읽다 보면 군침이 도는 책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한창훈 소설가의 , 시리즈다. 제목 그대로 바다에서 올라오는 먹거리들을 소개해 놓은 책인데 어찌나 글맛이 좋은지 한참 읽다 보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작가도 그런 말을 자주 들었던 모양이다. 개정판을 낸 책의 작가의 말에다 이렇게 적고 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서점으로 갈 거라는 제 바람과는 달리) 대부분 읽다 말고 횟집으로 달려갔다고들 합니다. 영세한 동네 횟집과 수산물시장 영업에 약간의 도움은 되었다면 제 나름의 보람이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그저 회나 사먹고 돌아가곤 했던’ 바다와 가까워지고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 들었을 때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최고의 음악 평론은 음악을 다시.. 2022. 10. 15.
노매드랜드 집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이사할 집을 구해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짐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박하게 집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 집을 지은 사람들을 소개하는 방송도 있고, 건축가가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집을 소개하는 방송도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소설가에게 집은 ‘반드시 공부해야 할 공간’이다.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생활하며, 대부분의 사건이 집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기 수월해진다. 소설을 쓰기전에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주인공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직업으로 돈을 벌며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다. 어릴 .. 2022. 10. 14.
경계선 1943년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인종 폭동은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폭동 사건일 것이다. 자동차 생산이 호황이던 1940년대, 30만 명이 넘는 백인 노동자와 5만 명이 넘는 흑인 노동자가 디트로이트로 밀려들었다. 백인 거주자들은 흑인들이 지역과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고, 강력한 분리를 원했다. 한 자동차 회사에서는 백인들과 같은 생산 라인에서 일할 수 있게 흑인 노동자 3명을 승진시켰다가 2만 명이 넘는 백인 노동자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곪아가던 상처가 터진 것은 1943년 6월. 백인과 흑인들이 맞붙으면서 34명이 죽고, 43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000명이 체포되었고, 200만 달러 상당의 재산이 파괴되었다. 에서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디트로이트 폭동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2022. 10. 12.
리틀 포레스트 해마다 봄이 오면 신비로운 색의 변화에 탄성을 멈출 수 없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회색빛 속에서 연두의 기운이 드러날 때면 나도 모르게 특정 색깔을 응원하게 된다. “연두, 힘내라!” 소리 내어 응원하지 않아도 연두는 힘이 세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쑥쑥 솟아나 있고, 며칠 바쁘게 지내다 문득 살펴보면 나무며 땅이며 먼산에는 온통 연두 천지다. 연두는 서서히 짙은 녹색으로 변한다. 봄은 순식간에 번지고 계절은 빨리 바뀐다. 올봄에는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탓이라고 한다. 원래 겨울과 봄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었다. 완전한 겨울 - 혹한의 기운이 조금 사라진 겨울 - 봄의 기운이 살짝 드러나는 겨울 - 봄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듯한 추위가 느껴지는 겨울 - 마못해 .. 2022. 10. 11.
인사이드 아웃 최근에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신작 은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다. 재즈 뮤지션을 꿈꾸던 주인공 조 가드너는 밴드 오디션에 합격한 후 너무 기뻐서 뉴욕 거리를 뛰어다니다가 그만 맨홀 아래로 빠져버린다. 눈을 떠보니 사후세계. 이름도 무시무시한 ‘머나먼 저세상(Great Beyond)’이다. 깜짝 놀란 조 가드너는 무작정 도망을 가다가 이번에는 ‘머나먼 전 세상(Great Before)’에 도착한다.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이 자신의 성격을 형성해줄 ‘불꽃’을 찾는 곳이다. 조 가드너는 22번 영혼의 불꽃을 찾기 위해 함께 모험을 떠난다. 황당한 스토리 같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을 잘 살려, 설득력 있게 사후세계와 태어나기 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가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런 곳이 있을.. 2022. 10. 10.
미나리 수렵 채집 시기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은 하루 평균 네 시간만 일했다고 한다. 휴일 없이 일한다고 쳐도 주 28시간 근무다. 일을 마치고 와서는 동굴에서 멍 때리고 있거나 벽화 같은 걸 그렸겠지.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사냥을 하거나 먹을 걸 구하러 나갔을 것이다. 음식 창고가 가득 차거나 날씨가 궂으면 일을 건너 뛰기도 했을 것이다. 24시간 편의점이 없다는 건 좀 불편해 보이지만,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삶은 좀 부럽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에게도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겼던 시기가 딱 한 번 있었다. 군입대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겠다며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외갓집에 ‘자진 농활’(내 의지로 뛰어 든 농사 활동)을 간 적이 있다. 일손이..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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